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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연 중 양호선생이 제일 한가하고 일이 없어 보여 부럽다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듣지만 그렇게 만만하면 왜 선생님이라는 명칭이 붙었겠나.

 

  "하아아아아..........."

 

  거하게 한숨을 뱉고는 겨우 몇 줄 끄적인 종이를 다시 힘껏 구겨버리곤 의자 뒤로 풀썩 기대 누워버렸다. 스스로도 생각하지만 정말로 미쳤지. 그 우중충하고 어두컴컴하던 저가 어쩌다가 이런 번듯한 직장에다가 '선생님'이라며 학생들을 지도해야하는 중학교 양호선생님이 되었는지는 정말 집안 대대로 떠들다 못해 7대 미스터리로 남고도 남을 일이기는 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요, 쓰레기 같이 살겠다며 막 굴린 인생이 도대체 뭣때문에 이렇게 터무니없이 빛의 세계로 굴러가 버린 걸까. 아아, 그냥 구석에서 고양이와 박혀있으면 누군가 불쌍하다고 주워서 고양이와 함께 키워주는 그런 행복한 불연소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싶었는데 말이죠- 히힉.

 

  그렇게 스스로를 자학하면서도 던진 쓰레기를 주워 휴지통에 넣고, 다시 안경을 치켜세우곤 교육일지를 꾸역꾸역 작성하는 이치마츠의 성실함과 책임감이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사실은 아마 죽어도 그딴 것은 자신에게 없다며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때는 하늘이 찌르는 매미소리와 물고기가 산책할 것 같은 열대야의 공기가 밤마다 곤욕인 여름. 이치마츠는 습기에 눅눅히 늘러 붙어 어느새 펼쳐지지 않는 페이지 같은, 아무에게도 고백 못할 짝사랑을 더디게 하고 있었다.

 

 

 

 

 

 

 

 

 

  여름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계절이긴 했다.

 

  도쿄의 여름은 흔히 드넓은 푸른 하늘과 커다랗고 새하얀 구름, 땀을 흘리는 청춘들로 정말 아름답게 꾸며지긴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곱게 삶아 육수를 빼내는 날씨에다 출퇴근하는 전철들은 열기와 땀냄새들로 가득 찬 지옥철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학교에선 얼마 안남은 방학에 들뜬 망아지들의 난동을 진정시키며 과연 집에는 가져다주기는 하는지 알 수 없는 안전사고예방 가정통신문들을 수 없이도 찍어 보내야하는 계절인 것이다. 물론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려 아침부터 일찍 자전거 출퇴근을 하는 이치마츠는 적어도 위의 몇 가지는 해당이 안 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싫은 점은 여름의 재량 시간에는 빌어먹을 보건수업이 있다는 점이다. 이치마츠가 이 학교로 오기 전까지는 강사를 초빙하는 식으로 몇 해 넘겨오기는 했으나, 있는 사람을 안 굴려먹는 건 화이트칼라 업종인 학교도 탐탁지 않아 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역시 선생은 나하고 안 맞아. 아니 일하는 게 안 맞아. 생각하니 탈주하고 싶다. 자꾸 한숨을 쉬면 땅이 꺼진다고 타박하던 누군가가 떠올라서 다시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평소처럼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헤집으려다가 순간 수업시간임을 깨닫고는 아무렇지 않게 올렸던 손으로 여러 개의 단풍 같은 손 너머 붕붕 손을 흔들다 못해 몸까지 흔들려는 학생을 지목했다.

 

  "...그래, 마츠노군. 3번 문항의 정답은?"

  "5번 기도유지입니다!"

  "..정답이야. 잘했어."

 

  답지 않게 조금 칭찬의 말을 덧붙이면, 환하게 웃으며 반짝반짝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눈빛이 곧게 쏟아진다. 어쩐지 뒷목이 쭈뼛 근질거리는 느낌에 시선을 피하고는 활짝 열린 창문가의 펄럭거리는 하얀 커튼이며 퍼런 반짝이로 요란하게 꾸며놓은 교실 게시판의 상태를 애써 뜯어보다가 다시 응급처지의 중요성과 심폐소생술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자신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며 바보처럼 헤죽대는 눈빛에 무더운 교실이었지만 서늘한 식은땀이 흐르고, 장이 펄떡대다 못해 트위스트를 추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저 녀석 앞에서 코피를 흘릴지언정 탈분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힐끔 곁눈질을 하자니 지치지도 않는지 이치마츠를 아직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다시 자연스럽게 자료프린트를 나눠주는 척 이동을 해보지만, 이 양호실보다 넓은 교실에서 저 반짝거리다 못해 타오르는 저 녀석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아. 결국 작게 머쓱한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똥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는 저 녀석의 이름은 마츠노 카라마츠. 제 형보다 키가 너무 작아서 매번 짓눌려 분하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농구부 활동에 누구보다도 열심인 열혈 15살. 가족사항 할머니, 구조대원인 형, 그리고 카라마츠인 3인 가족. 부모님은 "별이 되러 갔다!" 이래서 미안하다고 무심코 뱉었었지만 알고 보니 미국 헐리우드로 현재 세계여행 중. 나중에 오해할 말은 하면 안된다고 혼냈다. 벌로 시바견처럼 볼살을 주욱 늘렸더니 못생겨져서 귀여웠다. 귀엽고 말랑하고 귀여워. 귀여운 거 최고.

 

  우리의 첫 만남은 카라마츠가 갓 중학교에 입학한 봄, 나무에서 떨어지던 카라마츠를 내가 받아낸 일이 계기라고 그 녀석은 알고 있지만, 카라마츠는 내가 카라마츠를 입학식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 모를 테였다. 당연하지. 말한 적 없으니까. 네가 아기고양이에게 홀려서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입학식에 지각했었다는 점도 그때 흘린 물건이 작은 해골 열쇠고리라는 것도 전부 나만 알고 있는 걸. 꿉꿉하다 못해 질척한 나의 짝사랑이 이때부터 시작인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것도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를 구하려다가 고양이를 감싸고는 같이 떨어져 내리다니 이건 신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내 머릿속도.

 

  설마 이치마츠도 제 학생에게, 게다가 코흘리개를 이제야 막 벗어난 듯한 꼬맹이 남자애에게 너무 눈부셔서 입에 담기도 남사스러운 사랑이란 걸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네-네, 압니다요. 쓰레기의 본성이 어딜 가지 못하듯 핵폐기물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입죠. 그렇지만 말이야, 갓 태어난 새끼오리나 아기고양이가 저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면서 까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 쓰다듬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그 부드럽고 따뜻한 솜털을 만지고 사랑해주고 싶어지지 않냐 말입니다요. 아, 물론 이 녀석은 오리도 고양이도 아니라 개과였지만. 그러고 보니 요새 은으로 된 팔찌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 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야바이.

 

  "티―쳐!"

  "...복도에선 뛰지 마라. 마츠노."

  "넵!"

  "종례는?"

  "보건수업이 끝나면 바로 가도 좋다고 했다!"

 

  말도 잘 듣네. 귀여워. 수업이 끝나자마자 튀어나왔더니 곧바로 뒤쫓아 나오는 녀석의 뒤에 꼬리가 붕붕대는 환상이 보여서 매끈한 까만 머리를 쓰다듬으려 무심코 손을 뻗었다 흠칫 멈췄다. 그러자 녀석은 제 머리가 자석인마냥 스스로 손에 머리를 척 하니 갔다댄다. 당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버리자, 카라마츠가 먼저 고개를 올려 둥근 눈으로 쳐다본다.

 

  "으~음? 쓰다듬고 싶었던 거 아닌가? 쓰다듬어도 좋아!"

 

  기분 좋거든! 저라면 함부로 입 밖에 내뱉지도 못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이 녀석의 특기란 건 알았지만, -신이냐?!! 천사야?! 역으로 죽여주세요!!! 아악! 마츠노! 마츠노!!! 마츠노오!!!! .., 라며 뇌 속에서 난리발광 자폭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외면의 이치마츠는 그동안 뇌내 트레이닝을 착실하게 했던 성과인지 쓰다듬기는커녕 코웃음을 치고는 반듯하고 매끈한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 보건실을 향해 걸어갔다. 사실 정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도 카라마츠가 좋아하는 쿨한 이치마츠 선생님은 지켜졌다. 아-자스 마이셀프. 이게 바로 어른의 자제심이다.

 

  "아프다..."

  "아프라고 때렸으니까."

  "왜?!"

  "잘 생각해 봐."

 

  울상짓는 표정으로 왜 맞았는지 끙끙대며 머리를 굴리는 카라마츠는 역시 귀여웠다. 근데 이 녀석 또 양호실에 갈 생각인가. 우중충한 양호선생 밖에 볼 것도 없는 이 양호실이 뭐가 그리 좋은지 평소에도 보건담당이라며 뻔질하게 드나들더니만 지겹지도 않은가. 뭐, 나는 좋지만.

 

  오늘 보건수업을 마지막으로 남은 커리큘럼이 모두 끝났다. 내게 있어선 '여름방학 전 특별안전교육'이라는 이벤트가 끝난 것이다. 하아아, 드디어 끝났구나. 그래도 양호실이 아니라 교실에서 공부하는 카라마츠도 봤으니 조금은 기뻤을까. 부담감은 100배긴 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녀석을 곁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여름이었나.

 

  곁에서 쫄래쫄래 따라 걸으며 아직도 끙끙대며 궁리하는 녀석의 둥근 정수리를 쳐다보다가 한번 거칠게 헤집고는 성큼 먼저 앞으로 나선다. 뒤에서 들리는 에? 하는 당황어린 의문사에 이 꼬여있던 숨통이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어서,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고 있던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

 

  애써 꼿꼿하게 세운 허리를 새우처럼 편히 구부리고 곧게 넘긴 머리를 헤집어 덥수룩한 앞머리를 내려오게 했다. 덥고 답답하더라도 훤히 보이는 시야는 편치 않다. 이런 머리는 이렇게 뽈뽈거리는 애들이나 시원하게 어울리지. 제 나이도 얼마 먹지 않았으면서 하는 소리는 거의 다 죽어가는 노인네마냥 유들한 모냥이 우습긴 하지만.

 

  어느새 외출중이라는 익숙한 팻말이 걸린 문 앞에 도착하면, 활짝 열린 문으로 아까 내렸던 커피 냄새가 에어컨 바람소리와 함께 살랑 반긴다. 열대 온실 같던 복도의 공기가 서늘한 냉기에 스르륵 몸을 타고 도망가는 감각이 새삼 반갑다. 뒤따라온 녀석도 그걸 아는지 힘껏 숨을 들이키는 나른한 감탄 소리가 나서 녀석 몰래 입꼬리를 슬핏 올렸다. 그래, 시원하니?

 

  양호실은 창가 쪽의 칸막이 커튼이 드리워진 간이침대 두 대가 고양이 물품으로 도배되어 있는 적당한 크기의 책상과 책장이 마주 보고 있고, 약이 들어 있는 철물함과 작은 냉장고가 출입문 쪽 벽을 떡하니 차지한 게 전부인 아담한 공간이었다. 수업용 새하얀 가운은 책장에 박힌 못에 걸어두고 커피를 조금 흘린 자국이 희미하게 남은 가운으로 갈아입고 지정석에 털썩 앉는다. 직장이긴 하지만 오롯이 제 공간에 있다는 감각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법이다. 물론 옆에 쪼르르 따라 앉은 이 녀석은 제멋대로 들어온 침략자이긴 하지만.

 

  "집에 안가?"

  "여기는 시원하니까."

 

  너무 당연하게 과제프린트를 꺼내들며 하는 소리에 내심 실망하는 자신도 웃기긴 했지만 그저 보건담당이 너무 사욕을 부린다며 그 둥근 뺨을 다시 한 번 늘리는 것으로 응징하고는 말았다. 우에엥- 하는 얼굴은 역시 귀여웠다. 땡땡 발갛게 물든 볼을 매만지면서 잠시 울상 짓던 카라마츠는 재차 입을 열었다. 오늘은 수학프린트니까, 티쳐가 있으면 좋은 걸. 선생님은 수학 잘하니까.

 

  "...."

 

  그러면서 믿는다구 티쳐!,라며 엄지를 세우는 표정에 창문으로 뛰어내릴 뻔했지만 다시금 딱밤을 먹여주는 걸로 말았다. 1층이기도 하고. 뻔히 수학선생님이 학교에 있는데, 나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북슬북슬한 자의식이 털을 빳빳하게 훅 부풀리는 기분이었다. 무슨 사랑에 빠진 여학생도 아니고 한참이나 어린 코흘리개의 말에 이리저리 갈대처럼 마음이 휘둘리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당장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한숨을 푸욱 흘리자니 제 표정을 살폈는지 반듯한 눈썹이 추욱 처지는 모습에 그저 어슬렁 일어나 냉장고에서 차게 식혀진 보리차 한잔을 따른다.

 

  "...열심히 해."

  "네!"

 

  파란 머그를 쥐고 찰나에 맑게 갠 여름 하늘처럼 환히 웃는 표정은 역시 이길 수 없었다.

 

  한동안 종이에 흑심의 사각거리는 소리만 양호실에 살풋 내려앉는다. 자료를 정리하는 척하며 제 옆자리에 앉은 녀석을 곁눈질하면 뭘 그렇게 늘 열심인지. 분명 콩깍지일게 분명한데도 그 모습이 덧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시간이 약이 되려나 싶지만.

 

  "...불치병이야."

  "에?"

  "그거 답 틀렸다."

  "엣!"

 

  턱을 괴고 손끝으로 툭 프린트를 건드니 황급히 연필을 물고는 끙끙대며 고민하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연필 무는 버릇은 안 좋다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잘근잘근 연필을 무는 입술을 툭 건드렸다.

 

  "카라마츠. 버릇."

 

  그렇게 살짝 주의만 주려고 했을 뿐인데,

 

  " ,힉!!!!"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지. 그 자리에서 강을 오르는 연어처럼 펄쩍 뛰어오른 카라마츠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고 하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확 끌어 당겼다.

 

  풀썩. 팔 안에 차게 식은 셔츠가 닿았다가 순식간에 뭉근한 체온으로 한가득 데워진다. 심장에 닿은 까만 머리가 정신없이 쿵쾅대는 소리를 들을까봐 황급히 떼어내려고 했지만, 머리와 다르게 몸은 그대로 굳어져버렸던지 꾸욱 끌어안은 몸을 잡고는 움직이질 않으니 이를 어째. 그렇게 우렁차던 매미소리도 어째서인지 들리지 않아서 등골이 오싹하고, 손에는 갑자기 땀이 확 치솟기 시작하니 표정 관리가 저절로 안 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

 

  가만히 긴장 속에서 아무 말도 없이 체온을 느끼길 몇 분. 주변이 서늘하니 노곤해지는 무릎 위의 따뜻한 체온과 교복에서 올라오는 섬유유연제의 냄새 때문에 숨이 거칠어질까 봐 온몸의 컨트롤에 힘껏 신경을 돌렸다. 지금 일어서면 안 된다. 안 돼!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조견오온공.. 아!! 집중이 안되잖아! 아니 집중이 될 리가 없지!!

 

  "...이치마츠 티쳐."

  "ㅇ, 어?!"

  "나 오늘 잘했나?"

 

  얼굴이 보이질 않지만 까만 정수리 아래의 하얀 귓가가 발그스레 햇빛에 물든 것처럼 마냥 발갛다. 어쩐지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린 기분이어서 이치마츠는 고개를 황급히 천장으로 돌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다듬으며 카라마츠의 머리를 헤집었다. 저가 고양이를 어루만질 때처럼 부드럽게 상냥히.

 

  "..그래, 정말 잘했어. 훌륭한 학생이네."

 

  그러자 제 몸에 기댄 무게가 어쩐지 긴장을 풀고 안심하는 느낌이어서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까지 스킨쉽은 딱밤을 먹이거나 볼을 늘리는 정도라던가 손이 스치는 일 밖에 없었던지라-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동정 같았지만-이치마츠는 조금 더 이 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복습을 잘했더라. 심폐소생술랑 흉부 압박 순서도 틀리지 않았고."

 

  아, 정답인가. 말은 없었지만 기댄 체온이 기뻐하고 있다는 느낌이 났다. 처음의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은 어디로 갔는지 한없이 노곤한 기분이 되어 이치마츠도 조금 더 의자에 편하게 기댔다. 지금 살짝 여름이 좋아질 것 같아. 조금 크고, 귀엽고 무거운 개냥이라고 생각하니 뜨끈한 체온을 맞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자주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와 닿아있다는 그 현실이 더없이 꿈만 같아서 이치마츠는 지금 자각몽을 꾸는 게 아닐까 싶었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고 현실이라기엔 지금 여기서 편안하게 카라마츠를 껴안고 기대있을 성격의 이치마츠가 아니니까. 그래서 너무 긴장이 풀린 걸지도 몰라.

 

  "그, 형님이 도와줬다. 형님이 나는 배운 대로 굉장히 잘한다고 했었다! 에 또, 그리고 사실 티쳐를 양호실이 아니라 교실에서 봐서 정말 좋았다구? 학기 중에 보건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응급처치 공부하는 것도 재밌었다!"

 

  또, 선생님은 형님 같지만 더 어른 같고, 공부도 잘하고, 멋있고 고양이도 잘 따르고 ...음, 이치마츠 선생님이랑 있으면 좋아. 우물쭈물하며 꺼내든 그 고백 같은 목소리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그럼 방학에 나랑 놀러 갈래? 좀 더 공부하러 말이야."

 

 

  언제나 사랑은 폭풍처럼.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휩쓸려버리는 것.

  폭풍전야 같은 무더운 한여름, 조금 풋내나는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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